기획전시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은 가정폭력피해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며 그들의 몸의 상처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 역시 치료가 시급한 상황임을 절감했다. 1989년 쉼터가 처음으로 이전한 후, 단계별 프로그램으로 개인상담, 집단상담, 가정폭력 교육이 정착되었다. 내담자 중심의 여성주의 원리에 입각한 개인상담은 이틀에 한 번씩, 집단 상담과 집단교육은 일주일에 한 번씩 실시했다. [기획전시-여성주의상담 바로가기]

쉼터에서 진행된 집단상담은 내담자들의 의식 향상과 더불어 서로 간에 자매애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는 내담자들이 지지적인 분위기에서 각각의 학대 경험을 나누고, 개인적인 학대 경험을 사회구조 속에서의 남녀 문제로 인식하고,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도왔다. 쉼터 퇴소자들 간에 자연스럽게 자조그룹이 형성되어 베틀여성모임이 생겼다. 내담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입소할 경우, 다른 내담자들에게 주는 심리적 고통이 크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되도록이면 동반 아동이 있을 경우 입소를 제한하였으나, 위급한 경우에는 협의를 해서 받았다.

개인 상담 진행과 동시에 전문가 및 같은 경험을 겪은 쉼터의 다른 내담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집단상담을 진행한다. 내담자들은 이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폭력의 아픔을 극복해 나갔다. 이는 현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오래뜰의 집단치료로 이어지고 있다.

 

베틀여성모임

<베틀여성모임>은 쉼터를 거쳐 간 여성들의 후속모임으로처음에 위기여성모임으로 시작하여 88년 이후 베틀여성모임으로 명칭이 바뀌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공식적인 상담의 과정이 끝난 후에도 자조모임의 성격으로 일정기간 모여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집단 상담의 효과를 얻고자 하였다. 현재 격월로 모여 집단프로그램, 문화체험 등을 진행하며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

 

 

치유캠프 자아여행

한국여성의전화 쉼터에서는 가정폭력피해 생존자들이 자아를 되찾아 가는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 중 하나인 쉼터 내담자 모두가 함께 떠나는 '치유캠프 자아여행'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30주년 기념 수기집;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단행본]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30주년 기념 수기집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17년 쉼터 30주년을 맞이해 아내폭력 피해 여성들이 직접 쓴 현장의 기록,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수기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여덟 명의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직접 쓴 폭력 현장의 기록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쉼터로 탈출해온 여성들이 열두 번의 글쓰기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썼다.

 

끔찍했던 그 시절을 회상해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 글을 쓰고 난 후에는 꼭 몸살을 앓았다. 수많은 폭력의 밤에 느꼈던 두려움과 좌절, 수치심이 살아났다. 밤마다 그가 나타나는 악몽을 꿨다. 입 안이 다 헐고 어깨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마치 몸이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나도 너무 힘들었다고. 살고 싶었다고. p.86

마침 휴대전화가 안방에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112 단축번호를 눌렀다 꺼버렸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조금 후에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112였다. 얼른 받아보니 안내원이 112에 신고하셨느냐며 장난전화 아니냐고 물었다. 너무 황당했다. 내가 받았기에 망정이지 남편이 받았다면 나는 신고한 것에 대한 분풀이로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쉼터에 와서 나와 같은 상황으로 한 여자가 남편에게 살해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81 

네 번째로 집을 나와 수술대에 오르면서 까지도 아이들 걱정에 이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뺏는 것 같아 미안했다. 다섯 번째로 집을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이대로는 못 살겠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엄마랑 같이 가면 아빠를 못 볼 텐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어릴 적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학대받아온 아이들은 지금의 무서운 상황에서 자기들도 벗어나고 싶다고, 아빠는 없어도 된다고 했다. p.227

1. 결혼 전 영문도 모르고 내가 사간 선물로 맞은 일을 용서합니다.

2. 신혼여행에서 내 옷을 갈기갈기 찢은 일을 용서합니다.

3. 결혼 초에 처음 내 목을 졸라댔던 일을 용서합니다.

4. 딸을 낳았을 때 아들이 아니라고 서운해하며 나의 잘못도 아닌 것을 전부 내 탓으로 돌린 것을 용서합니다.

5. 나를 목욕탕에서 때려 깨진 유리에 발을 다치게 했던 일을 용서합니다.

6. 내가 맞아서 내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일을 용서합니다.

7. 계단에서 나의 손가락이, 꼬리뼈가 부서지게 구타한 일을 용서합니다.

8. 구타당하다가 베란다로 도망갔을 때 나에게 칼을 들이댔던 것을 용서합니다.

9. 내 머리채를 잡고 벽에 사정없이 처박은 것을 용서합니다.

10. 3일 내내 나를 구타하여 정신없이 내가 도망쳐 내려오다 계단에서 발목이 부러지게 만든 일을 용서합니다.

 

이 용서가 당신을 다시 만나고, 당신과 다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신을 용서하고 나도 용서받고자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내 용서로 신께 당신에 대한 판단을 맡기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 당신도 이제 그만 우리를 놓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22년 동안 당신의 아내였던 마리아가. p.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