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시


1983년 6월 11일 한국여성의전화가 폭력 없는 세상, 성 평등한 사회를 위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여성폭력 문제를 ‘사적’인 문제에서 ‘사회적’인 장으로 이끌어낸 한국여성의전화 30년은, 한국여성인권운동의 30년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당시 많은 여성단체들이 ‘민주화’라는 사회전체의 목표에만 집중할 때, 한국여성의전화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여성 고유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여성인권운동단체로서 선도적 모습을 보였다. 2013년 30주년을 맞은 여성의전화는 현재 전국 25개지부와 1만회원이 함께하고 있는 한국사회 가장 큰 규모의 여성인권단체이다.

1983년 창립 이후 아내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지속적으로 한국사회에 문제제기 하였고, 한국여성폭력 근절운동과 우리사회의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던 수많은 성폭력 사건 - 성폭력에 대한 재판부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했던 변월수사건, 학교내 성폭력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던 파주여종고 사건, 아내폭력의 심각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던 남모씨사건,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살해 사건으로 가정폭력방지법의 기폭제가 되었던 여러 사건들, ‘아내강간’ 문제를 제기했던 신모씨 사건, 여성의 재산권 문제를 제기하게 된 황혼이혼 사건 등 - 들을 문제제기하고 해결한 장본인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3대 여성인권법(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에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여성폭력피해자 사법정의실현을 위한 지속적인 법 제·개정운동, 모니터링 및 정책제안 활동도 하고 있다. 또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수많은 여성주의상담가, 폭력예방교육강사, 지역여성운동가 등을 양성하였다.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11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행사를 한국 최초로 개최하는 등 여성폭력예방캠페인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고, 2006년 이후 여성인권영화제, 공익광고 제작, 어플리케이션 제작 등 문화적 매체를 활용한 대중운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30년간 여성폭력피해자 지원과 함께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참여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교육적·문화적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한국여성의전화 창립취지문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상식이며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결코 개입해서는 안될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 곧 가정내의 폭력과 성폭력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사회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관용적인 태도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여성의전화는 그처럼 말 못할 사정에 놓여 있는 폭력의 희생자들, 특히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아내들과 성폭력에 의한 여성들을 돕고 가정에서 폭력을 추방하는 동시에 사회전체의 심리적 건강에 기여하고자 하는 상담사업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행이 철저히 은폐된 범죄로 남게 되는 이유에는 첫째, 가정 폭력이 누구보다도 가장 서로 사랑하고 의지해야 할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이나 제삼자들에게 있어 실제로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요, 둘째,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부장적 의식구조가 사회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그러한 폭력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의식, 곧 과다한 수치심 때문에 가해자나 피해지가 다 같이 현실을 은폐시키는 데 공모하게 되는 경우라 한다면, 후자는 그러한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태도 곧, 소유주인 남성은 소유물인 여성을 무슨 방법으로든지 다스릴 권리가 있다고 하는 극도의 성차별주의적 의식에서 나오는 폭력정당화의 자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의전화는 가정 내 폭력과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문제가 결코 개인 책임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일깨워줌으로써 그러한 폭력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설 용기를 주며, 가정 내 폭력, 성폭력 추방의 필요를 절감하는 남녀들이 힘을 합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단계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전화는 여성운동의 일환이며, 1975년 국제여성의 해에 채택된 멕시코 선언문인 “남녀는 가정에서 또는 사회에서 평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남녀평등은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보장되어야 한다.”(5조) “전 세계 여성은 강간, 매춘, 육체폭행, 정신적 잔인한 행위같은 여성의 인권침해를 없애는 데 단합해야 한다.”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될 가정으로부터 폭력을 추방시키는 것은 여성스스로가 그것을 완강히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과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우선 필요한 것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행은 다른 어떤 폭행이나 마찬가지로 결코 사회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여성들 스스로가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 여성들은 경제적 독립력을 기름으로써 용납될 수 없는 행위가 거듭 자행될 때에는 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거부행위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가족관계의 파괴가 아니고 건전하고 대등한 부부관계의 회복이며, 그 때문에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가족법 조항의 개정은 가정으로부터의 폭력의 추방을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이러므로, 여성의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여성들에게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하는 모든 제도나 관습, 인습을 없애고 남녀의 평등한 인격관계 수립으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데 있다.
 
1983.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