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시
한국여성의전화는 창립 시부터 아내폭력 문제를 여성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 행위이자 사회문제로 보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운동은 바로 이런 노력의 정점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외국의 입법례를 조사하는 법 제정 초기부터 시행령, 시행규칙을 만들고 법이 시행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전 과정을 담당했다. 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법 집행 과정을 모니터링했고 입법 취지에 맞는 법 시행을 위한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가정폭력방지법제·개정운동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과정에는 많은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 당사자들이 함께했다. 1994년 우리 사회에서 처음 열린 아내(가정)폭력 사진전의 첫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보며 오가던 와중에 보따리를 든 여성이 진행하던 찾아와 한 사진을 가리키며 "제가 바로 저 사람이에요"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금방 그가 피해자임을 알아채고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이문자 선생을 통해 우리 '쉼터'로 안내했다. 이런 사례는 그 후에도 많았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은 수많은 우리 사회의 아내(가정)폭력피해자들의 호소와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범국민운동본부의 줄기찬 노력으로 1997년 11월 17일과 18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각각 통과되었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운동은 그동안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던 아내(가정)폭력 문제를 공적인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한국여성의전화의 현장성과 이슈의 대중성이 잘 조합되어 드러난 성과였고 또 한국여성의전화의 많은 회원과 한국여성의전화 활동을 지지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전문가와 운동가들의 열정과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법개정운동을 시작하다
그러나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처음 제안한 것과는 다르게 구성되면서 한계점을 가진 채 제정됐고, 시행과 함께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법의 목적 조항이 가정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개정운동의 최우선적 과제이다.
2000년부터는 본격적인 개정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7년, 오히려 가정폭력 근절을 어렵게 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신설되어 통과되었다. 가해자가 상담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가해자 기소를 유예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가정폭력이 처벌받아야 할 범죄라는 인식을 약화시키는 제도다. 이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폐지하는 것 역시 한국여성의전화가 벌이고 있는 개정운동의 주요 골자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
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첫 공식 모임으로 1991년 ‘성폭력관련법 입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고, 추진위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촉진하기 위해 여연 산하 특별위원회로 결합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모임을 거쳐 1992년 3월 19일 '성폭력특별법제정추진특별위원회'(이하 '성특위')로 이름을 바꾸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추진위에서는 대통령과 법제사법위원회 및 관계기관에 '성폭력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에 관한 촉구 공문 및 공개 질의서를 보냈고 시위, 공청회, 법안 제출, 면담, 홍보 활동 등을 벌였다. 그 밖에도 '성폭력 추방 모범시민과의 만남'(1993),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74개 범여성, 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1993) 및 '올바른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성폭력 추방을 위한 문화제'(1993), '친고죄 존폐에 관한 공청회'(1993) 등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세 건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고 성폭력 추방과 특별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3년 12월 17일 국회에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고, 1994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1994년 법 제정과 동시에 시작된 개정운동
그러나 노력 끝에 제정된 법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성에 관련된 형법 법안을 그대로 모아 놓고, 새로운 형태의 성폭력 범죄를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기존의 형법이 갖고 있던 많은 문제점들이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은 채로 이름만 성폭력특별법으로 제정된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기존의 통념과 법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법 제정과 동시에 개정 운동이 일어났다.
2013년 6월 성폭력 관련 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여성운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친고죄조항 삭제, 공소시효의 적용 배제 대상 확대, 강간 객체의 확대, 유사강간죄 추가 등이 이루어졌다. 또 성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 실시가 공공기관에 의무화되었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을 피해 유형 및 피해자 특성에 따라 세분화했으며, 상담원 교육훈련시설의 설치・운영 및 위탁 근거도 마련했다. 2014년 7월 개정에서는 성매매, 가정폭력, 성희롱, 성폭력 등 여성폭력 예방교육의 통합 실시 규정이 마련된 한편, 교육에 대한 점검 등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성폭력 관련 법은 계속 강화되고, 법적인 제도도 이전에 비해서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방향으로 점차 달라지고 있으나 성폭력을 둘러싼 통념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법제도에서 여성의 경제적 권리 확보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자와 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1992년 무료법률상담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남편이 이미 재산을 처분하거나 은닉해 무일푼으로 이혼하게 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은 남편의 폭력과 외도 등 불법한 행위에 못 이겨 이혼을 하는 것에 더해, 평생 열심히 일해서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을 증명할 길이 없다며 그 억울함을 어디다 호소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여성의 재산권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계기는 1999년 있었던 ‘황혼이혼’사건이다. 70세를 훨씬 넘긴 여성이 남편의 신체적, 정신적 학대와 재산의 일방적 처분에 항의해 이혼을 제기하였으나 재판부는 ‘평생 함께 살아왔는데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해로하시라’는 취지로 이혼을 불허한 것이다. 할머니의 재산분할 요구에 수십억 재산을 타인에게 무상증여한 할아버지의 대응은 여성의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행 민법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경제세력화운동은 여성의 경제세력화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부부공동명의운동을 시작으로 부부재산소유현황 및 의식조사와 캠페인, 청소녀 경제캠프와 성인 대상 교육 등 운동의 방식은 다양했다. 여성들의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이 한국여성의전화 경제세력화 운동의 방향이자 철학이었다.
스토킹처벌법 제정운동
스토킹처벌법 제정운동 국여성의전화는 2013년부터 스토킹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을 마련하여 입법운동을 전개해왔다. 19대 국회에서 제안하여 발의된 법안이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됨에 따라, 20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입법 제안 및 제정촉구 활동을 펼쳤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응하여 정당과 후보자에게 주요 입법과제로 정책 질의와 제안을 했고, 여성정책 및 법률 전문가와 함께 기존 법안을 재정비했다. 자문회의, 입법공청회, 토론회, 논평, 카드뉴스, 서명운동 등 다양한 통로로 스토킹 범죄를 규율하는 입법의 취지와 방향, 내용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2016년에는 총 4개의 스토킹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19대 국회에서 제안했던 법안이 6월 3일 자로 다시 발의(의안 번호 2000102)되었고, 올해 새롭게 보강한 법안이 9월 30일 자로 발의(의안 번호 2002537)되었다. 발의된 4개 법안 중 3개 법안이 스토킹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원칙과 피해자 보호 및 수사·재판상의 권리 확보를 위한 조치 등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속해서 제안해 온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지난 4년 동안 스토킹 범죄 처벌의 법제화를 위해 법안을 마련하고 지속해서 제정운동을 펼쳐온 한국여성의전화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