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시
아내에 대한 폭력을 문제제기하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내에 대한 폭력은 오랫동안 ‘개인적인 일’, ‘집안일’로만 여겨졌다. 그런 가운데 1983년 6월 11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창립식에서 발표한 아내 구타 실태조사 결과는 아내폭력이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여성 708명 중 299명(42.2%)이 결혼 후 남편에게 구타당한 일이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 6월 13일, 전화 2대로 상담을 시작한 후 한 달 동안 541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지, 누구나 다 이렇게 살고 있는지, 누구에게 얘기를 하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여성들은 반복되는 좌절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아내폭력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가부장적,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성별 권력관계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면서 여성주의 상담과 쉼터 운동 등의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왔다. 또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운동을 통해 아내폭력에 대한 인식과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아내 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현실: 폭력 사위를 살해한 이상희 할머니 사건
이상희 할머니 사건은 자신의 딸을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딸의 동거남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상희 할머니의 딸은 동거남으로부터 허벅지를 칼로 찔리고 목을 졸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미 동네 주민이 관할인 소래 파출소에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경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이상희 할머니의 딸은 어머니 대신 자신이 동거남을 살해했다고 거짓 자수해 구속되었으나, 이상희 할머니가 한국여성의 전화를 찾아와 법률상담을 하면서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 결국 어버이날인 5월 8일 70대 노모는 경찰에 구속되었다. 당시 모든 일간지와 방송사가 이상희 할머니 사건을 특집으로 다루었고, 이상희 할머니 구명운동과 함께 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에 여론이 모아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 추방운동의 시작
성폭력이란 용어가 일반인에게 생소하던 시기, 한국여성의전화는 일상생활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폭력을 '성폭력'으로 개념화하면서 스스로를 성폭력추방운동단체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했다. 당시 여성의전화는 '성의 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차별이 폭력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여성을 경시하는 말, 여성에 대한 희롱, 강제적 성관계, 물리적 구타 등을 포함했다.
1980년대 성폭력 추방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데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이루어진 상담의 역할이 매우 컸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상담전화를 통해 여성들이 사적 및 공적 영역에서 겪는 각종 차별과 폭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상담 사례를 근거로 이제까지 철저히 비가시화된 성폭력이 사실은 매우 시급한 사회적 문제임을 제기했다. 이제까지 여성들이 당해왔던 숱한 성폭력이 비로소 '성관계'가 아닌 '범죄'로 폭로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