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술 따르기 강요 여성부 성희롱 결정 관련, 서울행정법원의 취소 판결에 대한 의견서[연대성명서]


표제 : 2004술 따르기 강요 여성부 성희롱 결정 관련, 서울행정법원의 취소 판결에 대한 의견서[연대성명서]


주제 : 여성폭력추방운동 ; 기타추방운동


기술 : 지난 2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회식자리에서 여성교사로 하여금 남성교장에게 술을 따르도록 강요한 것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의 결정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술자리를 이용한 직장내 성희롱 사건이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본 단체들은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이 성희롱 및 성폭력에 대한 재판부의 심각한 몰이해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바입니다.첫째, 재판부는 성희롱 및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는데 있어 피해자의 관점을 전혀 반영·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제외한 다른 여자교사들은 술을 따르라는 말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였으나 성적인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을 성희롱 취소 판결의 한 근거로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성희롱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가 여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주었는지 여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느꼈을 감정을 고려하되 피해 생존자의 주관적인 사정을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다시 말해 해당행위가 성희롱인지 아닌지 여부는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상대방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사건을 바라볼 때, 설령 다른 주변인들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었던 해당 언행이 성적인 수치심을 갖게 할 언행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가 해당 언행으로 인해 성적인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는 분명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한국사회에서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문제 및 그 심각성에 대한 몰이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판단에 있어, a) 사건이 발생한 회식자리가 새로운 교감 부임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교사들이 교사들의 전체회식에 교장 및 가해자를 초대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가해자와 교사들이 처음으로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자리였다는 점, b) 참석자들이 주로 학습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고 여자교사들이 교장으로부터 술을 한잔씩 받은 다음 건배제의 후에도 술잔을 비우지 아니하고 교장에게 답례로 술을 권하지도 아니한 상황에서 가해자가 교장에게 술을 따라드리라는 취지의 언행을 하였던 것에 비추어, 문제의 행동이 성희롱이 아니라 회식장소에서 부하직원이 상사로부터 술을 받았으면 답례로 상사에게 술을 권하여야 한다는 차원의 언행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재판부가 이번 성희롱 판결을 내리는데 있어 기준으로 삼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합니다. 직장 내 회식자리에서 술자리를 빌어 빈번하게 발생하는 왜곡되고 폭력적인 성문화의 문제들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성희롱 피해의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시킵니다. 이러한 직장 내에서의 폭력적이고 왜곡된 성문화, 뒷풀이 문화는 위계관계에 의한 권력, 차별적 성별관계에 의한 권력 등 복합적 권력을 지닌 남성 상사에 의해 강요되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권을 침해하고 성적인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직장내 회식자리에서 술을 함께 마실 것을 요구하는 것이 건전한 상식과 관행상 용인될 수 있는 풍속으로 판단한 재판부는 남녀의 차별적 지위와 왜곡된 성문화로 인한 노동권침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문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이러한 판결 그 자체가 또 다른 인권침해적 요소로 기능한다고 하겠습니다.

셋째,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1998년 판례를 들어,  어떠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쌍방 당사자의 연령이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성적 동기나 의도의 유무,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하여,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용인될 수 있을 정도의 것인지 여부 즉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대법원 1998.2.10.선고 95다39533 판결참조). 고 기준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가 이번 성희롱 사건을 판단하는데 있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위의 판례는, 현재 성희롱 사건 처리의 기준이 되고 있는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제정 이전에 내려진 판결이라는 점, 당시에 성희롱 자체가 법적인 개념으로 존재하지조차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위의 판례를 기준으로 하여 본 성희롱 사건을 판단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위와 같은 기준이 이후 제정되어진 법에 기초하여 성희롱에 대한 노동부와 여성부의 판단 및 집행의 기준과 많은 괴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 기준 자체가 이미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이해의 정도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성희롱 및 성폭력 나아가 여성인권에 대한 재판부의 이해 정도를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이에 본 여성단체는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성희롱 사건에 대한 부적합한 선례로서 악용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아가 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대해 여성부가 항소를 제기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생산자 :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날짜 : 2004-2-26


파일형식 : [연대성명서]


유형 : 문서


컬렉션 : 성명서/의견서/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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