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조00 성폭력 사건 판결, 그 이후를 보며 [논평]


표제 : 2009 조00 성폭력 사건 판결, 그 이후를 보며 [논평]


주제 : 여성폭력추방운동 ; 성폭력


기술 : 최근 13세 미만의 아동이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상대방의 저항을 심히 곤란케 할 정도의 폭행으로 인해 심각한 상해를 입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을 둘러싸고 여론이 뜨겁다. 피해의 내용과 정도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재범이며 반성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주가 중요한 감경요인으로 적용됐다는 점도 분노를 샀다. 성폭력 피해의 현실에, 가해자의 태도에,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 대한 분노는 당연하며, 충분히 더 분노해야 한다.

13세 미만의 아동성폭력의 경우에 피해자의 진술은 의심받거나 부모나 대리고소인이 유도심문하여 성폭력 사건으로 몰아간다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200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구 집단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중학생 3명은 무혐의로 풀려났고,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이런 현실과 맞닿아 아동 대상 성범죄 사건 불기소율은 2004년 17.88%에서 2007년 25.56%로 급격히 늘어난 반면, 실형선고율은 2006년 43.5%에서 2008년 37.6%로 줄어들었다. 실형선고가 내려진다고 해도 성폭력 가해자들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범행을 자백했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어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형량을 감경하는 현실에서 가해자들은 감형의 면죄부를 받는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한편, 대중들의 관심과 분노가 피해 내용과 가해자 처벌에 집중되어 있는 요즘, 상담소로 자신의 어린 시절 성폭력 사건이 떠오른다며 피해의 고통을 호소하는 상담전화들이 온다. 또한 사무실로는 아동성폭력 사건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당부와 그것을 위해서라면 지원과 지지를 보내겠다는 시민들의 전화가 온다. 이번 사건은 확실히 성폭력 범죄에 대한 여론형성을 활발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다른 아동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숨통을 트이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분노는 아동 대상 성폭력 뿐 아니라, ‘모든’ 성폭력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거리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알고 싶지 않겠지만) 가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가해자의 80%는 아는 사람이기에 피해를 말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은 피해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비난을 받는다. 더군다나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4세 이상의 피해자들은 좀 더 복잡다단한 과정을 경험한다. 따라서 많은 경우,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피해사실을 말하지도 못하며, 그렇기에 그 피해는 ‘사건’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피해를 공론화한다고 해도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까지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경찰에 신고하고, 수차례의 수사에 응하고, 검찰조사와 함께 재판이 시작된다. 얼마나 저항했는지, 저항을 하지 않았다면 저항을 하지 못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질문 받고, 일관되게 말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고소율은 10% 정도 미만에 지나지 않고, 40% 정도만 기소되며, 기소된 사건의 30% 정도가 실형을 선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기소되지 않고, 기소된 사건조차 실형선고의 수치는 낮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렇게 하여 많은 성폭력 사건은 숨겨지거나 사건의 가해자는 유유히 그물망을 벗어나고 있다.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양형기준을 상향조정 하겠다”는 정부와 더불어 그동안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 같던 여당과 야당 또한 이구동성으로 아동성범죄자 처벌의지를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동성범죄를 줄이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들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왜 유독 아동 대상 성범죄에만 신경을 쏟는가하는 의문을 떨치기 힘들다. 아동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피해의 경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길기에 아동 성폭력 가해자는 당연히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그러나 성인이라고 해서 피해의 깊이와 고통이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유독 다른 ‘모든’ 성폭력 범죄를 포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보자. 혹시 우리는 여전히 성폭력에 대한 뿌리 깊은 통념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도 여전히 성폭력 사건의 ‘순결한’ ‘진짜’ 피해자는 ‘따로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무엇이 성폭력이고, 성폭력이 왜 사회적 범죄인지를 말해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지지자로서, 성폭력 권하는 사회를 발견하는 목격자로서, 그리고 사회를 바꾸어나가야 하는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성장해야 한다.

바라건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거두어들이는 성찰의 시간, 피해의 경험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충분한 애도의 시간, 성폭력의 현실을 망각하지 않을 것에 대한 기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또한 ‘모든’ 성폭력 범죄에서도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것이 형량의 감경요인이 되지 않기를, 성폭력은 “부당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실행되는 성욕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성’을 무기로 계획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범죄로 인식전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해자 처벌에 따른 대책만 임시방편으로 내놓지 말고,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심스럽게 한 가지 당부를 더한다. 피해당사자의 피해에 대해 분노하고, 고통을 헤아리고, 피해당사자를 응원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함께 해야 할 몫이지만, 우리의 관심과 분노를 표출할 때 신체적 피해를 들어가며 피해당사자에게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가중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앞으로 여자로서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 대신 상처 입은 부분은 피해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설명되는 많은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만들어주자. 그리고 그런 삶이 가능한 사회를 보여주자.


생산자 :

한국여성의전화


날짜 : 2009-10-10


파일형식 : [논평]


유형 : 문서


컬렉션 : 성명서/의견서/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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