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죽음으로 외친 가정폭력을 사실상 외면한 수원지법안양지원을 고발한다 [성명서]


표제 : 2010 죽음으로 외친 가정폭력을 사실상 외면한 수원지법안양지원을 고발한다 [성명서]


주제 : 여성폭력추방운동 ; 가정폭력


기술 : 가정폭력 피해를 알리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과 그 딸의 절규,
죽음으로 저항한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배신과 무관심.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부와, 가정폭력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도록 방기한 대한민국을 고발하며.

‘제발, 살아남아라.’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는, 죽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지난 5월 진도대교에서 다섯 살 딸과 함께 투신한 故이금례씨(가명). 남편의 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가해 남편을 꼭 처벌해달라고 유서를 남겼지만, 정작 아이들과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한 남편 최정환(가명)은 10월 26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밖에서는 좋은 사람, 집에서는 자녀와 아이들을 짓밟고 칼로 찌르기도 했던 최정환(가명)의 폭력을 일일이 고발했던 23장의 유서는, 그저 유서일 뿐이었다. 故이금례씨는 죽음으로 폭력을 고발한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폭력을 대변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녀의 죽음과 함께 모든 진실까지 묻어버렸다.

“죽을 거면, 죽을 각오로 가정폭력에 맞서지 그랬느냐!”
... 라고 故이금례씨를 탓하지는 못하겠다.

이제는 제발 살아남아라. 가정폭력 아내들이여, 제발 살아남아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살아남음으로써 저항하라.

부부싸움이라 부르지 말라.

한국사회는 부부 중 일방이 다른 한쪽에 의해 살해된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가정폭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부싸움”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라고 하면서 폭력상황에 노출된 아내들의 도와달라는 외침을 쉽게 외면한다. 아직도 경찰은 가정폭력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집안일’이라며 돌아가고,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남편을 고소할 것이냐’며 피해자를 궁지에 몬다.

가정폭력이 아니라 부부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처벌하기보다는 아내가 견디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폭력을 폭력이라 부르지도 않는 것은 여성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고통은 고스란히 나와 아이들에게 남아있지만 그건 ‘문제’조차도 아니며, 이때 해결할 방도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가정폭력 때문에 망명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내담자, 도망가기 위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아내들, 극단적인 선택이 이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이 되는 이유는 이 사회가 가정폭력을 규범으로 용인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에 맞서기도 전에 그것이 가정폭력이라는 사실부터 설득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이 가정폭력 피해자를 죽게 만드는 구체적이고도 집요한 이유다. 사람들은 그게 가정폭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한다. 그건 부부싸움일 뿐이라고, 그렇게 죽을만한 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눈을 감는다.

다시, 故이금례씨의 절규를 생각한다.

“제발제발 부탁합니다. 최정환(가명)을 엄벌에 처해주십시오. 신용카드건과 군포사건, 통장 훔친 사건, 우리 딸아이 얼굴에 흉지게 하고, 깜깜한 밤에 와서 눈동자도 못움직이게 찌르고, 이혼하자고 하면 나가라고 윽박지르고,.... 지칠대로 지쳤고 저런 행동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자살로서 제 누명을 벗기려 합니다...(중략)... 이 모든 진실을 꼭 밝혀주십시오. 본인 이금례는 위 사람 최정환님과 남이 보지 못하는 폐쇄된 가정 안에서의 횡포를 다 밝혀주십시오. 큰아이, 둘째아이는 아예 고개를 내 젓습니다. 재판장님, 고개숙여 부탁드리옵건데, 이 사람 최정환이 인간 이금례를 짓밟아 아이들조차 키울 수 없는, 나아가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려고 합니다. 최종환을 처벌해 주십시오”- 故이금례씨의 유서내용 中

스물세장의 유서에 두서없이 써내려간 사건조각을 모아보니, 故이금례씨의 유서에는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수법들이 적혀있었다. 1) 피해자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키고 2) 차차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며 3)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4) 본인은 정상적인 가정의 가장인 척 했다.

남편 최종환은 남이 보는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었지만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돌변했다. 칼을 들이대며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고 위협은 위협에서 끝나지 않았다. 돈을 내 놓으라며 부엌칼로 무릎을 찔러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故이금례씨는 병원에 다녔다. 故이금례씨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욕설과 폭력, 경제적인 착취, 깜깜한 방안에서 이루어지는 위협, 남편 최종환이 스스로 자해한 뒤 故이금례씨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정신병원에 넣으려는 등 故이금례씨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온갖 시도들이었다.

이런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故이금례씨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 억울함과 갑갑함, 책임지지 못할 것 같은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 불안함,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같은 두려움, 막막함. 그 마음과 만나니 가슴이 저려온다. 차라리 죽으면 깨끗이 해결될 일,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의 현실이었다.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멈춰라, 가정폭력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하라.

정의(正義)와 인권(人權)은 왜 여성에게는, 왜 ‘아내’에게는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10월 26일 최정환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부(수원지법안양지원 형사5단독, 판사 김성우)는 선고이유에서 1) 故이금례씨가 자살하기 2년 전 전치 3주의 상해와 생존한 딸의 가벼운 상해만을 기소했고, 2) 기소범위 밖에 있는 피해자의 자살은 직접적인 양형요소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故이금례씨의 죽음은 자살일 뿐 최정환의 폭력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남긴 유서가 있고, 진단서가 있고,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한 자녀들이 있지만 재판부는 그것이 죽을 만큼 힘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남편 최정환의 폭력이 없었다면 죽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그러한 상식도 판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만큼 괴롭힌 죄.
딸아이를 껴안고 바다로 뛰어내릴 만큼 고통을 준 죄.

그에 합당한 댓가는 집행유예가 아니다.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재판부는 최정환이 반성하고 있고 합의금을 주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를 밝히고 있지만, 1개월 반의 구금생활로 지난 9년간 故이금례씨와 아이들이 당했던 고통을 대신할 수 없으며, 유가족들에게 지급했다는 합의금은 살아남은 아이가 받아야할 당연한 양육비일 뿐 故이금례씨와 아이의 죽음에 이르게한 폭력을 용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故이금례씨는 죽음으로써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렸고, 이제 우리는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에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다. 더불어 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우리사회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정도도 ‘유예’를 걷어내야 할 때다.


생산자 : 한국여성의전화


파일형식 : [성명서]


유형 : 문서


컬렉션 : 성명서/의견서/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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