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피임하면 가만 안 둬" 협박, 강제 성관계 임신 폭력속에 애 키울 수 없어...낙태하면 안되나요[언론기고]


표제 : 2010 "피임하면 가만 안 둬" 협박, 강제 성관계 임신 폭력속에 애 키울 수 없어...낙태하면 안되나요[언론기고]


주제 : 여성폭력추방운동 ; 기타추방운동


: 미디어운동 ; 컨텐츠생산


: 문화운동 ;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기술 : 한국에서의 낙태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로 줄곧 불법이었다. 하지만 2005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연간 낙태수술은 평균 35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8년 낙태혐의로 검찰에 접수된 46건 중 84.8%가 혐의없음, 기소유예 등으로 불기소 처리되고, 단 7건만 기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낙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낙태 논쟁이 수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 낙태 논쟁이 거의 전무했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는 단초다.

그러나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낙태 문제를 언급했다. 그 후 보건복지부에서 낙태 단속 강화 의지를 나타내며 관련 사회협의체를 발족했다. 법제를 정비하고자 나서는 등 낙태 관련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로 구성된 프로라이프 의사회(2008년 산부인과 전문의 모임인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출범)가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병원을 고발하면서 낙태는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태아는 생명이므로 이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임신한 여성의 몸을 볼모로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려 한다는 입장이 동시에 난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시급한 문제는 임신을 원하지 않은 여성들의 현실적 문제들이었다.

여성은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가

소위 '생명존중'을 한다는 사람들은 여성들이 '책임감 없는 성관계'의 결과로 '피임의 한 방법으로 낙태'를 선택해, '무분별한 낙태'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를 단순히 임신을 유지하기를 원치 않는 여성의 '선택'이나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올 4월 초 20대 초반의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임신 3주차에 접어들었다는 그녀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홀어머니 밑에서 커 가장으로 집안 빚을 갚느라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쪽방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는 부모님께 드릴 말씀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저나 남자친구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야 할 아이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것 같다"며 "중절 수술을 해주는 곳도 없는데 무작정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울었다.

그녀뿐 아니다. 올해 7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생후 44개월과 22개월 된 자녀를 두고 있는 한 30대 기혼여성도 임신 사실을 알고 절망했단다. 최근 남편이 실직했기 때문이다. 아이 둘을 보육시설에 보내는 것보다 본인이 키우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나았기 때문에 직장도 그만둔 지 오래됐다. 그녀는 "지금 상황에서 아이를 하나 더 낳는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며 "원정낙태니 수술비가 수백만 원이니 하는 글을 보니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했다. 그녀는 밥을 먹을 수도 일을 할 수도 없다며 전국에 있는 병원을 다 뒤져서라도 (낙태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기혼여성도 임신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 결혼 5년 차이지만 피임에 무지했다는 그녀는 남편이 현재 실직상태여서 본인이 실질적인 가장이라고 했다. 그녀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아이를 갖게 되어 잠시라도 쉬게 된다면 직장으로 다시 복귀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 처해 있다"고 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지금껏 모은 돈은 다 빚을 갚는데 썼고, 남아 있는 은행잔고는 100여만 원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산부인과에 문의하니 시술비용이 300만 원이라더라"며 "이 달 들어오는 급여를 받아도 그 금액을 충당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아이를 원치 않는 건 아니지만 "낳게 된다면 더 힘들어질 경제적 상황 때문에 낙태를 결정했다"고 괴로워했다.

올해 11월까지 한국여성의전화에 접수된 낙태관련 상담을 보면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사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위의 사례와 같이 소득이 없는 경우, 본인의 생계를 겨우 유지할 정도로 소득이 적은 경우, 고용조건이 불안한 경우를 포함한다. 출산과 육아가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지워져 있는 상황에서,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이들에게 책임만을 강요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일까.

폭력적 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나

여성들이 경제적 이유 다음으로 임신중단(실질적 의미의 낙태, 한국여성의전화는 낙태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임신중단이라는 단어를 쓰는 운동을 하고 있다)을 결정한 사유는 폭력적인 환경이었다. 폭력적 환경은 주로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을 일삼는 상대로부터 기인한다.

자녀를 하나 둔 결혼 3년 차인 영선(가명)씨는 남편의 반복적 폭행에 시달려왔다. 폭행이 너무 심해 친정부모도 이혼을 원하면 하라고 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남편의 강제적 성관계로 인해 임신이 되었다. 친정 식구, 시집 식구, 남편 모두 이 임신을 반기지 않는다. 영선씨는 폭력에 노출될 게 뻔한 이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선(가명)씨는 6개월 전 임신했다가 낙태한 경험이 있다. 애인의 폭력이 너무 심해서 헤어지려고 했지만, 헤어지려고 할 때마다 모텔로 끌려가 또 폭행을 당했다. 남자친구는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피임하는 게 발각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해 왔는데, 최근 또 임신이 됐다며 울었다.

대부분의 여성은 낙태를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폭력적인 관계에서 임신이 된 경우, 미성년자인 경우, 임신이 지속되면 직장을 다닐 수 없는 경우,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경우 등의 환경 속에서 낙태를 결정한다. 자신과 태어날 생명, 주변 환경과 가족관계 등 모든 총체적 상황속에서 고민 끝에 낙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낙태한 여성을 누가 범죄자라고 할 수 있나

그러나 지난 10월, 한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낙태시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남편에 고발당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는 일이 발생했다. 형법 제269조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모자보건법에서는 일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범위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되어 있어 매우 협소하다. 따라서 낙태법에 따르면 위 사례와 같은 사유로 낙태한 여성은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폭력적 관계에 있던 남성이 이 법률을 악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진영(가명)씨는 폭력적인 남자친구와 이별 후,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고 같이 의논하고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남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상대는 '그 애가 누구 애인지 어떻게 아냐'며 나 몰라라 했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던 진영씨는 낙태했다. 그러나 낙태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는 돌변하여 다시 사귀지 않으면 낙태죄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너무 자주 일어난다. 이런 협박을 당하는 건 진영씨뿐 아니다. 관계 지속을 목적으로 낙태한 사실을 부모나 직장에 알리겠다, 고발하겠다는 남성은 의외로 많다. 정부는 낙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마당이다. 그러나 누가 이 여성들을 범죄자라 할 수 있을 것인가.

한편, 이미 고발된 낙태 시술한 의사들도 형법 제270조에 1항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인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조항에 의해 집행유예 및 자격정지를 선고받고 있다. 올해 8월 수원지법은 낙태시술을 한 의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고, 9월 울산지법은 의사에게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형법에 현실을 반영하려는 몇 번의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1953년 제정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낙태법은 인구정책이라는 유령의 탈을 쓰고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낙태를 줄이겠다는 고발과 처벌의 결과는 낙태를 줄이는 대신 여성을 범죄자로 만들고, 안전하지 못한 불법 시술로 이끌며, 결국 여성의 목숨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할 뿐이다.

1960년대 시작된 가족계획운동...여성은 인구정책의 도구?

196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시행된 가족계획 운동은 피임법을 대중적으로 보급함과 동시에, 강력한 인구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가 낙태 시술을 묵인·방조함으로써 '불법 낙태'의 만연을 가능케 했다.

"삼천리는 초만원", "둘도 많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등의 구호가 담긴 포스터가 전국을 뒤덮었고, 심지어 골목골목을 돌며 무료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해준다고 홍보하거나, 시술을 받은 사람에게 아파트 분양권까지 주기도 했다. 지금과는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아이를 적게 낳기 위해 피임과 낙태를 혼자 감당하며 국가의 저출산 장려 정책을 따랐다.

공식적으로 국가의 인구조절책이 중단된 것이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또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고, 인구의 노령화가 다음 세대에 미치는 경제적 부담감을 강조하면서 출산 장려 정책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국가가 의도대로, 필요에 따라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거나 조절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이용해 온 우리 사회의 저열함에 있다.

반성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 정부는 성찰적 태도로 낙태정책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모 대학 교수가 '출산기피부담금'(출산을 기피하는 부부에게 내게하는 부담금)을 저출산시대의 정책대안으로 제시한 칼럼을 보며, 곧 정부가 이를 시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기우일까.

공론화 거쳐 '낙태법' 개정돼야

낙태문제는 공론화를 거쳐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규정으로 개선돼야 한다. 문제는 근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낙태논쟁이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이분화된 구조 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지난해 12월 조사한 온라인 설문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57.9%가 인공임신중절은 태아를 죽이는 것으로 인식하나, 인공임신중절의 제한적 허용에는 64.9%, 허용에는 10.2%가 찬성하여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상이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모순이라기보다는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단순한 낙태논쟁의 지형 속에서 응답자들이 현실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외국의 관련 입법례를 살펴보았을 때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거나 완전히 금지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특정시기까지는 낙태를 완전히 허용하고 그 시기 이후에는 전면 금지 혹은 몇 가지 허용 규정을 두는 기간방식 유형이나 의학적, 범죄학적, 우생학적,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적응방식 유형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 고려해 우리나라도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을 개정함은 물론, 현재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사유를 현실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저출산의 문제는 출산과 육아로 인해 당사자가 차별받지 않는 환경,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환경,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 과열된 경쟁 사회가 아니라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삶을 계획하고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게 맞다.

1979 UN 34차 총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EDAW)을 체택하면서 "재생산-성적 건강과 권리는 여성의 인권으로 보장돼야 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라고 명시했다. "인공임신중절을 하는 여성들을 처벌하는 법조항이 제거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3년 세계에서 89번째로 이 조약을 비준한 비준국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내년부터 낙태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필요한 경우 낙태 관련 현행법에 대해 정책적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이 '모든 국민'에 포함되는지 아닌지, 여전히 지켜보고 확인해야 하는 시절에 살고 있다.


생산자 : 란희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날짜 : 2010-12-24


파일형식 : 언론기고


유형 :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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