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가정폭력 여성들이 두 번 신고하지 않는 이유[언론기고]


표제 : 2014 가정폭력 여성들이 두 번 신고하지 않는 이유[언론기고]


주제 : 미디어운동 ; 컨텐츠생산


: 정책변화 ; 정책모니터링


: 여성폭력추방운동 ; 가정폭력


기술 : [멈추지 않는 여성폭력①] 피해자 보호 못하는 '가정폭력특례법'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현 박근혜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4대악' 근절 대상입니다. 정부는 그중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2013년 6월 '성폭력·가정폭력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폭력 예방과 엄정 대응 및 피해자 지원을 강화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이 느끼고 경험하는 현실은 정부 발표 이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폭력이 일어날까 두렵고, 폭력이 남기는 상처로 고통 받으며,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절망스럽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한 해 여성 살해 관련 언론보도를 통계 낸 바에 따르면, 2013년 한 해만 최소 123명의 여성이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상대방으로부터 폭력을 당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4대악 근절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며, 여성폭력의 현황과 쟁점을 살펴보려 합니다.... 기자 말

지난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윤필정(가명)씨를 면회하러 구치소로 가는 길은 제법 길었다. 윤필정씨는 남편으로부터 25년 동안 폭력을 당하다 지난해 9월,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이자 가정폭력 피해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법무법인(유) 원과 함께 재판 대응 활동을 하며 윤필정씨를 지원해 왔다. 5월 초, 피고인석에 선 그는 자신이 남편에게 어떤 폭행을 당했는지 이야기하며 내내 울었다. 그러나 윤씨의 정당방위는 인정받지 못했고, 끝내 실형을 받았다.

실형을 선고 받은 후, 구치소에서 만난 윤필정씨는 걱정했던 것보단 편안해 보였다. 그는 웃으면서 면회시간 내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이라는 말과 함께. 가슴이 먹먹했다. 윤필정씨와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오랜 기간 폭력을 당하다 지난 2012년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정숙현(가명)씨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가 30년을 달려왔건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도움의 손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작은 도움만, 작은 조치만 있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불행이다.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

CASA 공익광고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가정폭력방지단체 CASA는 아내폭력이 발생하는 일상의 문제를 공익광고 포스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C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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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가정폭력특례법'이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가정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그것이다. 이 법에 따라 가정폭력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할 수 있고, 가정폭력을 이유로 이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신고하기가 두렵다. 마음으로 이혼을 바라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부부 간에 가정폭력이 있으면 이혼하면 되지 않느냐고 간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혼은 그리 쉽지 않다.

[사례①] "남편은 저를 때리고 나서는 잘못했다고,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빌어요. 앞으론 나아지리라 생각했어요."
[사례②] "자신과 이혼하면 친정식구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해요. 네가 도망치더라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겠다고 하고요."

폭력을 경험하면서 실제로 남편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여성의 입장에서는 이런 협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해 헤어지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을 해도 그 다음이 걱정이다. 아이들, 친척,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까닭이다.

혼자가 되면 경제적인 걱정 또한 크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이혼을 해 가정경제를 떠맡게 되더라도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한부모 가정을 위한 지원은 아이들 교육비로 지원되는 몇만 원이 전부이다. 주거나 직업훈련과 같은 지원은 쉼터에 거주하고 있는 극히 일부의 피해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어떨까? 원칙적으로 경찰은 가정폭력 사안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 시킨 상태에서 집안에 들어가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현장에 출동해도 가해자 말만 듣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집안 문제', '사소한 말다툼' 정도로 정리하고 돌아가기 일쑤다.

[사례③] "남편이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물건을 던지고 제 얼굴과 머리를 마구 때려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은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하더라고요."

2010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했을 때, 출동은 하였으나 집안일이니 서로 잘 해결하라며 돌아간 비율이 50.5%, 집안일이니 둘이서 잘 해결하라며 출동하지 않은 비율이 17.7%였다.

또 2013년 5월 경찰청이 전국 경찰관 8932명과 가정폭력 담당 수사관 933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안에서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7.9%였고,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답한 비율도 35%나 됐다. 용기를 내 신고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피해여성들은 두 번 신고하지 않는다.

용케 경찰이 폭력 사실을 확인해 사법부까지 간다고 해도 마땅히 길이 보이지는 않는다. 기소까지 가는 것은 매우 힘들고, 재판으로 간다고 해도 가해자를 처벌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가정폭력 또한 명백한 폭력인데 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 원인은 가정폭력과 관련한 가장 핵심적인 법률인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여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법에 따라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된 범죄는 가정법원에서 처리된다. 가정법원은 '재판을 통하여 가족 내 갈등과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곳이다.

어렵게 이곳까지 가해자를 세워도 가해자는 처벌이 아닌, 주로 사회봉사나 상담명령을 받는다. 이제까지 주먹을 휘둘러왔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가해자에게 이제부터 때리지 말고 잘 화해해서 다시 잘 살아보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식이다.

덕분에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가정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사건 피의자 재범률은 2008년에 7.9%, 2009년 10.5%, 2010년 20.3%, 2011년 32.9%, 2012년 32.2%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해자 처벌보다 '가정 보호와 유지'가 더 중요한 법안

가정폭력방지법 전면 개정을 위한 토론회 2013년 11월 29일,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15주년을 기념해 가정폭력방지법을 전면 개정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 가정폭력방지법 전면 개정을 위한 토론회 2013년 11월 29일,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15주년을 기념해 가정폭력방지법을 전면 개정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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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식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 폭력을 겹쳐 생각하는 것을 어색해 한다. 가정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안식처라고 인식된다. 폭력은 외부에서 낯선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정에서 폭력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때문에 이 별스러운 사건을 만든 원인이 엉뚱하게도 피해자에게로 향한다.

가장이 행사한 폭력은 훈육이며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의 언행이 된다. 피해여성에게 남편이 폭력을 휘두른 이유를 물으면 '자신이 살림을 못해서', '남편 말에 말대꾸를 해서', '아이들 교육을 잘 못시켜서'라고 답한다. 이런 의식 안에서 남편은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가족구성원의 부족함을 꾸짖는 일을 했을 뿐이다. 따라서 폭력에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 통념이 가정폭력을 범죄로서 처벌하는 것이 아닌 훈육 방식을 교정하는 정도로 매듭짓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가정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과 발길질을 해도 되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겐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의 '가정보호'라는 원칙은 또 다른 감옥이 되고 만다.

미국도 1970년대에는 우리와 같이 가정폭력을 보호 처분 위주로 처리했다. 그러나 보호처분으로는 가정폭력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1980년 이후 가정폭력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현재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가정폭력 가해자 체포우선주의를 도입해 가정폭력을 신고 받는 즉시 가해자를 체포한다. 그리고 사안에 관계없이 엄격한 기준으로 가정폭력 위험성을 조사해 기소하게 되어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강력한 처벌을 통해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가정폭력특례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작년부터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을 위해 전문가들과 위원회를 구성하고 개정안 작업을 해왔다. 법의 목적에서 가정보호와 관련한 내용을 삭제하고 가족구성원의 인권과 안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게 이 작업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가해자들의 가정폭력이 훈육이 아닌 범죄이며, 여느 폭력사건과 마찬가지로 가정법원이 아닌 형사법원에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 시켰다.

범죄에 대한 면죄부, 조건부 기소유예

한국여성의전화는 법무법인(유) 원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윤필정씨(가명)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재판 대응 활동을 해 왔다.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올해 5월 18일까지 총 18,355명의 시민이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서 윤필정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서명을 남겼다.
▲ 한국여성의전화는 법무법인(유) 원과 함께 가정폭력 피해자 윤필정씨(가명)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재판 대응 활동을 해 왔다.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올해 5월 18일까지 총 18,355명의 시민이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서 윤필정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서명을 남겼다.
ⓒ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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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이자스민 국회의원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법안이 기존 법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보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가정폭력의 핵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특히 현행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조건부 기소유예'로 개정하고자 하는 안은 신중히 다뤄야 한다.

현행법의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가해자에게 상담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것으로, 2003년 시범적으로 실시된 후 제대로 된 효과 검증 없이 2007년 본 법률에 포함되었다.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유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법 감정상 가해자들이 자신의 폭력행위를 범죄행위가 아니라고 느끼게 한다.

더 심각한 건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건과 가정법원의 '보호처분'을 받은 사건을 비교할 때 폭력의 정도 등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손발로 구타하고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의 정도가 심한 사건들이 어떤 경우에는 보호처분을 받고, 또 다른 경우에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등 기소유예 처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개정법안에서는, '검사는 가정폭력범죄사건을 수사한 결과, 사건이 경미하고 재발위험이 낮으며, 가정의 평화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조건부 기소유예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소유예 조건으로는 기존의 상담명령 외에 보호관찰, 수강명령, 봉사명령, 치료명령, 화해조정, 기타 가정폭력가해자 성행교정 및 가정평화회복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면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사건의 경미성, 재발위험성, '가정의 평화회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 둘째 피해당사자의 인권보호보다 가정의 평화회복이 우선시 되고 있다는 점, 셋째 '화해조정'은 가정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범죄'로 인식하고 있는 이 법률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심각성이 희석되고,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현실에서, 오히려 기소법정주의(기소하기에 충분한 객관적인 혐의가 있을 때는 반드시 기소를 해야만 한다는 주의)를 기조로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서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다시는 윤필정씨와 같은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1심 재판부는 윤필정씨에게 실형을 내리면서 '국가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시스템이 있는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는 바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묻고 싶다. 국가시스템이 가정폭력피해여성의 인권과 안전보다 가해자의 가부장적 권위 보호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시스템이 윤필정씨와 같은 피해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그리고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두고 그 죄를 피해자에게 묻는 것이 과연 옳은지 말이다.


생산자 :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날짜 : 2014-6-13


파일형식 : 언론기고


유형 :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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