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사라지는 여성들, 관심 없는 국가[언론기고]


표제 : 2016 사라지는 여성들, 관심 없는 국가[언론기고]


주제 : 미디어운동 ; 컨텐츠생산


: 여성폭력추방운동 ; 기타추방운동


: 정책변화 ; 정책모니터링


기술 :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그 후 ①] 한국여성의전화의 인권침해 대응 활동
끊임없이 상해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다. 계속된 폭력과 협박 끝에 여성들은 생명을 잃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과 애인에 의해서다. 최근 한 달 사이, 여성들은 얼굴에 빙초산이라는 산성 물질을 맞아 화상을 입거나, 기르던 반려견 두 마리가 흉기에 목을 찔려 도살되거나, 장시간 수차례 폭행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복강내출혈이 발생한 끝에 숨졌다.

여성들의 얘기는 뉴스를 통해 계속해서 흘러나와서는, 사라졌다. 어쩌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국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싶을 때 황급히 움직였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이 우리 사회의 극심한 성차별에 있다는 얘기는 결코 하지 않았다. 불평등한 현실은 공기와도 같아서 몰랐고, 알아도 모르거나, 모르는 척했다. 실은 누구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상해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 여성들의 얘기가 그토록 흘러나오는데도 성차별에 대한 얘기는 단 한 번도 주요하게 등장하지 않았다.

'사소'한, 여성에 대한 폭력

참으로 부조리한 광경들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실상 '여성에 대한 폭력'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정의된 바도 없고, 실태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자료도 없다. 가정폭력, 성폭력 등 폭력 유형에 따른 분절적인 실태조사만이 3년마다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여성폭력 및 살해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 통계도 없다. 범죄통계에는 고작 피·가해자 성별만 표기돼 있을 뿐, 성별에 따른 범죄 발생 상황과 피·가해자 관계, 가해자의 특성 등은 알 수 없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국가의 관심 밖이었다.

1983년 창립 시부터 한국여성의전화가 줄곧 해온 얘기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소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 여성에 대한 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와 성차별에서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33년이 지난 2016년 오늘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본 사건이 여성에 대한 편견, 차별, 멸시의 맥락에서 발생한 것임에도 국가는 특정한 장소, 특정한 가해자에만 집중했다.

시민들은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고, 본 사건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성차별의 맥락에서 발생한 것임을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경찰과 정부는 끝내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여성이 살해당한 장소를 부각한 '화장실', 가해자의 개별적 특성으로 찾아낸 정신병력을 부각한 '정신질환'. 경찰과 정부의 조악한 키워드는 이 두 가지였다. 성차별에 대한 얘기는 아예 할 생각조차 없었다. 결국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진단은 그동안 정부가 '4대악(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근절'이니, '양성평등 사회 실현'이니 하며 해왔던 것들이 허울뿐이며,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여실히 증명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찰과 정부가 그 뒤로도 연이어 발생한 여성폭력·살해사건에서 가해자의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피·가해자가 모르는 관계에서 '동기 없이' 벌어진다는 '묻지마 범죄'가 부각된 근 한 달 사이, 여성들은 그들의 남편 혹은 애인에 의해 위협당하고, 폭행당하고, 살해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은 언제나처럼 뉴스를 통해 흘러나와선 흘러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연이어 열린 5월 26일 긴급 토론회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원인과 대책'과 긴급 집담회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에서 본 사건에 대해 문제의 본질은 '화장실'에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의 여성폭력·살해 실태와 대책을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어느 곳에서나 발생하며,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의 대부분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친밀하거나 신뢰하는 관계에 있는 가해자에 의해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본회가 2009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집계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들의 통계를 내온 결과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 동안, 남편 혹은 애인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여성들은 1051명에 달했다. 그런데도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소화'됐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의하고 국가의 기본방침을 규정하는 여성폭력근절기본법(안) 제정과 별도의 여성폭력범죄 통계 구축, 국가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 설치 등 강력한 사회적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변화를 위한 말하기는 계속된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뒤 우리 사회의 민낯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살해된 여성을 추모하고 우리 사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고발하는 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사진이나 영상이 특정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게시·유포되고, 외모비하와 욕설, 협박, 신상 유포를 하는 등의 인권침해 행위가 자행된 것이다.

이는 본 사건이 우리 사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경찰과 정부의 진단과, 그 진단 그대로 본 사건에 대해 '묻지마 살인'으로 보도하면서 추모 현장에서 일어나는 양상들을 단순히 '성대결'로 축소·왜곡하는 언론 보도와도 궤를 같이한다. 사건의 본질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성차별과 폭력에 분노하는 목소리는 갖가지 인권침해 행위로 위협받고 제지당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추모행동 참여자 인권침해 행위가 명백한 혐오의 표현이자 폭력임을 분명히 하고, 이러한 행위로 인해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위축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난 5월 25일 공동대응 발표 기자회견 '변화를 위한 말하기는 계속된다!'를 시작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와 공동대응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접수한 인권침해 사례에 공동변호인단을 통한 소송 등 법률 대응, 제보사례 분석, 여성인권침해 행위 중단을 위한 액션 등 세 가지 방향의 활동을 계획했다. 지난 6월 28일에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추모행동 참여자 인권침해 법적대응 설명회를 개최하여 대응활동 경과보고 및 향후계획, 법적대응 절차 및 내용을 제보자들과 공유했다. 소송 참여 의사를 최종 확인하여 7월 중순경 소송에 들어갈 예정이다.

말하기는 시작되었다. 아니, 계속돼왔고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성들은 성차별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성차별이라는 본질을 보려 하지 않는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성들은 연대하여 싸워나갈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또한 여성인권침해 사안을 지원하는 한편, 국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의 본질을 바로 보고 적극적 개입과 행동에 나서도록 요구하며 끊임없는 행보를 지속할 것이다.

활동일지

05/19 [논평] 여성이 생존을 넘어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05/21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 행진 참여
05/23-31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제보 창구 개설 및 접수
05/25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공동대응을 위한 여성단체 기자회견 "변화를 위한 말하기는 계속된다!"
05/26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원인과 대책> 국회 토론회 참여,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집담회 참여
06/01 강남 '여성 살해' 사건 관련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중단하기 위해 전 사회가 행동해야 합니다"
06/06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참여
06/09 <여성대상 강력범죄 종합대책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 토론회 참여
06/14 <평등해야 안전하다: 중첩된 혐오를 넘어 안전할 권리를 말하기> 토론회 참여
06/15 여성대상범죄대책 전면재검토와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시민사회단체/정당 기자회견 "정신장애인을 낙인찍는 여성대상범죄대책 중단하라!"
06/28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추모행동 참여자 인권침해 법적대응 설명회 개최


생산자 : 한국여성의전화


날짜 : 2016-7-25


파일형식 : 언론기고


유형 : 문서


컬렉션 : 언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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