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고통의 카메라, 외설적 카메라'를 넘어 무엇을 할 것인가[언론기고]


표제 : 2016 고통의 카메라, 외설적 카메라'를 넘어 무엇을 할 것인가[언론기고]


주제 : 여성인권영화제 ; 10회영화제


: 미디어운동 ; 컨텐츠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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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 1.
"극장에서 단 두 시간만이라도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해보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2006년 시작한 여성인권영화제가 10회를 맞았습니다. 영화제를 기획했던 2005년 당시는 여성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이 우리 사회 성평등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해도 왠지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는 것만 같았던 때였습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폭력에 대한 법률이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제정되면서, 상담소 및 쉼터가 제도화되고, 예방교육 등이 의무화되면서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착시'를 보이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나 여전히 '쉼터'는 만원이었고, 상담 전화도 끊이지 않았으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법률마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2006 제1회 여성인권영화제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한국여성의전화
그 무엇보다 여성폭력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되면서 '인권' 담론 안에 부재한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턱까지 차오르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해답과 실천'의 필요성이 여성인권영화제 시작의 동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제 10주년을 맞아 재현의 정치를 다룰 오늘 포럼 '당신이 보는 여성은 누구인가'를 개최하게 되어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바쁘신 시간 쪼개어 발제를 해주신 발제자 분들과 토론자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본 토론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여성인권영화제 나름의 해답과 실천을 영화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2.
남성서사 중심의 영화제작, 이에 단순하게 '소비되는 여성'으로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정민아 선생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객관적, 구조적으로 탐구되지 않은 채, '폭력성의 포르노그래피'에 그치고 마는 현실, 죄책감과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상의 인식의 확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지적 또한 매우 공감합니다.

그렇기에 여성인권영화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사회구조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의 변화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여성인권영화제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섹션 1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섹션 2 '일상과 투쟁의 나날들',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와 치유를 응원하는 섹션 3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움'으로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피움 줌인>과 <피움 줌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섹션을 구성하여 그 해에 특별히 영화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 <단순한 진심> 부대행사 "10년의 진심" 여성인권영화제 10년의 역사를 전시한 부대행사 "10년의 진심"ⓒ 한국여성의전화
특히 섹션 1에서는 군대나 학교를 다룬 영화들을 부러 골라 배치하려고 초기부터 노력해왔습니다.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부장적 문화, 위계질서 등을 대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 그만큼 적합한 소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0년 5회 영화제에서는 아예 "'진짜 사나이'의 재구성"을 주제로 <피움 줌아웃> 섹션을 만들어보기도 했었습니다. 왜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지 모르겠다며 항의(?)하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사실은 '왜'라는 의문을 갖는 것, 그 의문과 여성폭력을 연결하여 사유하겠다는 것이 저희의 야심찬 목표였으니, 박한 평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영화제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주제로 만든 영화들을 선정할 때 고려하는 부분은 첫째로는 피해당사자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는가 입니다. 피해 여성에 대한 편견을 기반으로 하여 인물의 입체성을 삭제했거나, 문제를 해석하지 않는 당사자를 등장시키는 영화는 상영대상이 아닙니다. 둘째로는 폭력을 어떻게 화면에 담았는가를 고려합니다. 폭력이란 것이 대개는 참혹하지만, 때로는 매우 건조하기도 합니다. 사실, 폭력의 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화제가 주목하는 것은 폭력을 둘러싼 감독의 해석입니다.

제9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리슨(Listen, 2014) 스틸컷ⓒ 한국여성의전화
기존 상영작 중에 프로그램팀의 감탄을 자아냈던 작품으로 「리슨(Listen, 2014)」이 있습니다. 부르카를 입은 이주여성, 히잡을 쓴 통역자, 두 명의 경찰관, 부르카를 입은 여성의 아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폭력을 묘사하는 장면 하나 없이, 경찰서의 상담실에서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가정폭력을 신고하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역자가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이지만,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과제들을 주저하다가 분노하기도 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고도 강렬하게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전달합니다. 「완전히 안전한(Safe Space, 2014)」이라는 영화는 난민운동권 내의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독일영화도 있습니다. 성폭력 장면은 최소화하고, 그 문제에 대한 조직원들의 가지각색의 해석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역시 10분을 조금 넘기는 단편이지만, 국경을 넘어 성폭력을 지배하는 통념을 무섭게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영화들을 찾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단선적이고 수동적인 피해자와 그저 소재로만 존재하는 여성폭력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영화 또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폭력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민아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인식의 확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4.
극장 밖으로까지 퍼져나가는 '인식의 확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식의 확장'은 어떻게 '실천'으로 연결될 것인가는 영화제가 궁극적으로 갖고 있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영화제는 일단 여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영화와 부대행사로 풍성하게 다루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성폭력 전반, 여성 노동권, 여성의 재생산권, 여성의 몸, 여성의 정치적 권리, 여성범죄 등을 담은 영화와 함께 성별고정관념, 미디어, 종교, 국가 등 여성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하는 영화들을 선정합니다.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여성운동, 여성연대, 여성문화, 그리고 여성인물들에 대한 조명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다음으로는 영화와 우리의 일상을 연결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피움톡톡'이 있습니다. 영화 상영 후, 그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전문가, 활동가를 초대하여 깊이를 더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3회에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는 감독들을 초대하여 「우리가 카메라를 든 이유」라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것이 4회부터 온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피움톡톡에는 현장 활동가, 연구자, 당사자 등 다양한 게스트들이 출연하여 관객들과 대화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 영화의 해석, 한국 사회와의 비교를 넘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참여형 이벤트 등을 통해 문제의식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도 관객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5.
영화와 사회는 서로의 거울입니다. 좋은 영화로 좋은 영화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은 그래서 다시 우리 사회를 주목하게 합니다. 성평등지수, 성별임금격차, 여성의 정치참여율이 최하위인 사회, 여성폭력 발생률은 최상위인 사회에서 왜 여성을 대상화하느냐고, 왜 소비하고 마느냐고 영화'탓'만 하는 것은 매우 부족한 비판일 것입니다. 성평등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벡델테스트는 통과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젠더 관점으로 영화제작환경을 분석하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젠더감수성 높은 여성관객들의 목소리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당신이 보는 여성'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성인권영화제는 앞으로도 계속 박제된 여성이 아닌, 우리 그대로의 여성을 볼 수 있는 영화제, 여성의 현실을 여성의 목소리로, 서로를 타자화하지 않으면서, 넘쳐흐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제,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영화제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주제가 있는 영화제, 소통하는 영화제, 즐기는 영화제, 행동하는 영화제,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 여성인권영화제가 10년간 놓치지 않고 있는 다섯 가지 모토를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여성인권영화제 10회 기념 포럼 <당신이 보는 여성은 누구인가 - 스크린, 브라운관, 프레스 속의 여성 재현, 이대로 좋은가>의 송란희 여성인권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의 토론문입니다.


생산자 : 여성인권영화제


날짜 : 2016-11-3


파일형식 : 언론기고


유형 : 문서


컬렉션 : 언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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