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멍들지 않는 가정폭력 광고가 필요해[언론기고] · 아카이브 문



2011 멍들지 않는 가정폭력 광고가 필요해[언론기고]


표제 : 2011 멍들지 않는 가정폭력 광고가 필요해[언론기고]


주제 : 여성폭력추방운동 ; 가정폭력


: 여성폭력추방운동 ; 성폭력


: 미디어운동 ; 컨텐츠생산


기술 : ['2011' 新아내폭력을 말하다④] 호주 등 해외 가정폭력 광고의 힘

모든 폭력이 멍든 몸으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멍은 가정폭력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어왔다. 때문에 가장 간단히 가정폭력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멍들지 않은 무수히 많은 가정폭력 피해경험을 그 범주에서 탈락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멍이 가정폭력의 전부를 설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멍을 제외한 모든 피해사실들을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악영향이 있다면, 우리의 이미지에서 가정폭력과 "멍든 몸"을 이제는 분리시켜야 하지 않을까.

멍들지 않는 가정폭력 광고를 찾으려는 노력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북경 버스정류장에 붙은 포스터..."거절 가정폭력"

2002년 북경시내 22군데 버스정류장에 게시됐던 가정폭력근절 포스터(이후 북경버스정류장 포스터)와 벨기에의 106가정폭력방지연합의 포스터(이후 106 포스터)를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똑같이 피해자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단호함>과 <무기력>이라는 차이가 있다.

북경 버스정류장 광고에는 단호한 모습으로 "거절 가정폭력"을 외치는 피해자가 서있다.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싶다거나 도움이 필요한 모습이 아니라, 폭력에 시달리지 않을 정당한 자기 권리를 알고 있는 피해자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피해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단호함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덕목(?)중 가장 중대한 것이다.

사실 피해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취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폭력관계를 해체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호함과 유연함, 취약함과 강인함을 오가며 가정폭력 피해자로서의 삶을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그런 시도 끝에 폭력관계에서 점차 벗어날 수록, 피해자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무기력한 모습이 아닌, 주도적이고 단호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당당히 폭력을 거절하겠다고 외치는 피해자의 모습은 폭력관계에 놓여있는 여성들에게 "당신에게는 충분한 용기와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와 달리 다소 처량해 보이는 벨기에 106 포스터를 살펴보자. 이 광고는 지난 2007년 벨기에의 광고대행사에서 제작했는데 눈아래 글씨를 적는 아이디어는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작한 아동폭력 예방 포스터를 모방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작한 아동학대 예방포스터는 아이의 멍든 눈 아래 깨알 같은 글자를 새겼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봐야 합니다. 아이의 눈 밑에 있는 것이 그저 작은 멍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심이 간다면 무언가 해야 합니다. 어린이 학대를 멈출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08000 55 555로 전화해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깨알같은 글씨처럼, 광고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가정폭력(아동학대와 아내폭력 등)의 특징을 표현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문제임을 호소한다. 이 광고를 모방해서 2007년 벨기에에서 제작한 106포스터는, 동일한 방식으로 피해자의 거짓말을 다뤘다. 여성의 눈 아래는 이렇게 적혀있다.

"어제 식사준비를 하는데 세척기가 돌고 있다는 것과 헤어드라이어가 켜 있는 걸 깜빡했어요. 과전압으로 갑자기 전기가 나갔죠. 어두워서 손전등을 찾다가 선반에 부딪쳤는데 운이 없게도 다리미가 떨어져서 내 얼굴에 맞았지 뭐예요. 그래서 멍이 들었어요."

106 포스터는 가정폭력 사실을 숨기는 피해자들의 거짓말을 다루면서 "창피해 말고 진실을 말하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멍든 얼굴에 무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다가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피해자의 형상은 누구든 닮고 싶지 않은 처참한 모습이다. 이 모습을 자신과 일치시키며 용기를 낼 수 있는 피해자는 많지 않다.

용기를 주기는커녕 스스로를 더 비참하고 부끄럽게 여기며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또다시 책망하게 될 수 있다. 아이는 폭력관계에 머물러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벗어나야 할 책임을 요구받는 폭력당하는 아내들에게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당신은 할 수 있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돕겠습니다"는 그 다음 순위여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보호이지만,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와 '용기'다. 피해자를 창피하고 부끄럽게가 아니라, 당당하고 용감하게 만드는 북경 버스정류장의 광고가 더 호소력 있고 감동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호주 법무부의 새로운 남성성 프로젝트에 축구선수가 '앞장'

2003년 호주에서는 증가하는 여성폭력을 줄이려는 의도로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집중 캠페인을 벌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 그건 모두 규칙위반! (Violence Against Women: It's Against All the Rules)"이라는 제목의 캠페인은 홍보 전략으로 "스포츠"를 활용했는데, 과격함과 폭력적인 것을 남성적인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홍보물에는 유명한 남성 운동선수들이 참여했다. 예를 들면 축구선수 데일 루이스(Dale Lewis)는 축구용어인 스트라이크(strike)를 이용해서 "여성을 치는 것? 그것은 폭력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캠페인은 피해자들을 등장시켜 폭력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관심을 호소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집중하고 있다. 캠페인의 구체적인 목표가 여성에 대한 폭력의 효과적인 감소라면 그 원인을 줄여가 보자는 것이다.

때문에 뉴사우스웨일스주(NSW) 법무부에서 캠페인을 위해 제작한 포스터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나쁘다거나,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남성들이 잘못알고 있는 왜곡된 남성성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앞서 본 축구선수 데일 루이스의 "여성을 치는 것(striking a woman)?, 그것은 폭력입니다"부터 "여성을 타는 것(sledging a woman)? 학대입니다", "여성을 강제로 만지는 것(force a woman into touch)? 성폭력입니다", "여성을 막아서고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mark a woman, watch her every move)? 스토킹입니다" 등이 그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 박사는 "NSW캠페인은 신체적·성적 폭력행위를 스포츠영역 상 모든 (경기)규칙의 위반 행위와 연결지어, 남성폭력행위에 깔린 문화적 의미를 다시 재규정하려고 시도했다"고 평했다.

이 캠페인은 8개월에 걸쳐 진행됐고 시드니를 시작으로 뉴캐슬, 울렁공 등 뉴사우스웨일즈 전역으로 확대됐다. 버스 뒤에는 포스터가 부착됐고 라디오 방송으로 폭력적이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남성성을 호소하는 유료 광고가 진행됐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왜곡된 남성성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성찰, 이러한 새로운 남성성 역할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은 비단 여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실천이라는 호주 법무부의 통찰이 놀라울 뿐이다.

포르노를 접하는 소년들, 여성을 비하하는 비속어들을 사용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마치 남자로 성장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묘사하는 데 익숙한 한국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광고다.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 '무관심을 관심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대부분의 광고에는 주먹으로 맞는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멈춰!"라고 외치지 않는 사람들의 싸늘함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종종 무지막지한 구타 장면을 함께 담아내곤 한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남아프리카 가정폭력근절운동단체인 POWA(People Opposing Women Abuse)의 광고는 색다르다. 2분 남짓한 이 영상은 요하네스버그 타운하우스에서의 실험을 담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5월 9일 밤늦은 시각, 한 남자가 드럼을 치기 시작하고 그 소리는 타운하우스에 울려 퍼진다. 시끄러운 소리에 하나 둘씩 이웃들이 드러머의 집을 찾아와서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날 저녁, 드럼소리만큼 시끄럽게 남녀가 다투는 소리가 녹음된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내고 이웃들의 반응이 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누가 오나 창문도 기웃해 보지만 고양이만 문 앞을 기웃거릴 뿐 누구도 이 집의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소리지르고 던지고 깨지는 소리만이 난무한 가운데 "매년 1400명의 여성이 그들의 남편에게 살해됩니다. 이건 불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라는 자막이 올라온다.

아프리카나 대한민국이나 매년 많은 여성들이 남편과 애인에게 살해되는 것도, 또 그런 심각한 범죄의 현장을 "집안일"이라며 외면하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가 한국에 비해 가정폭력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차이가 이후 여성폭력 감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교하며 주목해야 한다.

아내폭력, 사건이 아닌 '일상'의 문제다

호주 NSW 법무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 왜곡된 남성성의 해체를 역설했다면,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가정폭력방지단체인 CASA(Citizens Against Spouse Abuse)는 아내폭력이 발생하는 일상의 문제를 세 개의 포스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가정폭력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과 달리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할 수 없다. 욕실에 걸린 수건처럼, 찬장에 놓인 컵처럼, 신발장에 놓인 신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는 한 공간에서 '가족'으로 살아간다.

CASA는 수건, 컵, 신발을 가정폭력 공익광고에 초대했다. 수건과 컵이 놓인 자리, 모양, 신발의 위치만으로 아내폭력의 맥락을 오롯이 표현했다. 찌그러지고 억눌리고 깨어진 모습들은 피해의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당신의 삶을 컨트롤 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당신의 삶이 아닙니다(When he controls your life, it's no longer your life)"라는 메인 카피는 일상을 점령당한 채 살아가는 아내폭력 피해자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CASA는 포스터 하단에 "가정폭력은 당신의 존엄, 당신의 희망, 당신의 삶을 앗아갑니다. 고통은 타박상과 때리는 상처로만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벗어나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전화하세요"라고 적었다.

가정폭력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멍들거나 부어서가 아니라 나의 삶, 존엄,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멍든 피해자의 모습에 공감하지 못하던 피해자들은 찌그러진 수건과 밟힌 하이힐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곳에 있었다는 말에 용기를 얻는다.

아내폭력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문제다. '그의 수건'이 수건걸이를 점유하고 '그녀의 수건'을 구겨지게 하는 문제는 비단 그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겨진 채로 살아가는 그녀의 책임 약간, 그리고 구겨진 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와 무관심의 탓이다.

이런 조건에서 아내폭력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구겨진 채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 폭력성과 남성성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진실이 광고에 담겨야 하고, 가정폭력에 내가 관심을 가질 때 해결된다는 호소가 들어가야 한다. 이런 기본 맥락을 무시하고 단순히 멍든 엄마의 사진을 (광고에) 들이미는 것은 가정폭력을 근절하는 데에 전혀 기여할 수 없다.

앞의 광고에서 보듯이, 붓고 멍든 눈이 아닌 한 쪽에 구겨져 있는 수건이 가정폭력의 현실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주변인에게 '관심을 호소할 때'에도 죽어가는 여성을 등장시켜 거부감과 공포감을 주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관련된 것을 안겨주어 가정폭력에 개입할 용기를 주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할 때에도 퀭한 얼굴에 무기력한 모습보다는 가정폭력을 거절하는 당당한 모습이 바로 그녀 자신에게 있음을 알려야 한다. "당신에게는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생각 없이 만든 광고들은 가정폭력 해결에 득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좌절케 하고 폭력에 고립시킨다. 해방이후 가정폭력 공익광고가 2003년 제작한 '우리 엄마눈은 달마시안' 이란 제목의 광고 단 한 편뿐인 대한민국. 이제는 (호주 법무부에서 했듯이) '미래세대'를 위해서 제대로 된 가정폭력 거부 공익 광고를 만들 때가 아닌가 묻고 싶다.


생산자 : 김홍미리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날짜 : 2011-08-12


파일형식 : 언론기고


유형 : 문서


컬렉션 : 언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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