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폭력이라는 '문화' ·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20주년 · 아카이브 문


기획전시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내에 대한 폭력은 오랫동안 ‘개인적인 일’, ‘집안일’로만 여겨졌다. 아내폭력(가정폭력)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규정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여성의전화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여성의전화는 한국 최초로 아내폭력에 대한 설문을 실시해 그 심각성을 드러냈는데, 708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아내구타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42.2%(299명)의 여성이 결혼 후 남편에게 구타당했다고 응답했고, 그 발생 빈도나 폭력의 형태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① 아주 일상적인 폭력

 

② 죽거나, 죽여야만 끝나지 않도록

 

1990년대에는 가정폭력 관련 사건이 특히 빈번하게 발생했다. 1991년 남00 사건부터 1993년 이00 사건, 1994년 이00 사건, 1995년 김00사건 등 오랜 기간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해온 여성들이 남편을 살해한 정당방위 사건, 1995년 전말석(가명) 사건, 1996년 이00 사건 등 아들이 폭력 아버지를, 장모가 폭력 사위를 살해한 정당방위 사건은 가정폭력 관련 법 제도의 필요성을 더욱 높였다.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1994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전국 지부 및 다른 여성단체와 함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추진 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법안을 준비하며 법 제정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발족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전국에서 85,505명의 서명을 모아 1996년 10월 국회에 법 제정을 청원했다. 이후 3개 정당이 법안을 제출했으나, 제정되지는 못한 채 그해 회기를 넘겼다.

 

1997 매맞아 죽은 여자들을 위한 위령제

1997 매맞아 죽은 여자들을 위한 위령제

1997년 4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재촉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남편의 구타로 숨진 여성들의 가족이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이00 사건 이외에도 남편의 구타로 참혹하게 숨져간 여성들의 사건은 꺼져가는 가정폭력방지법의 필요성에 다시 불을 붙였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가운데 한국여성의전화에 남편의 폭력으로 숨진 여성들의 사건이 제보되면서 같은 해 5월 21일, 한국여성의전화와 범국민운동본부는 ‘매 맞아 죽은 여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 억울하고 두려웠을, 고통에 찬 여성들의 혼이었다. 더구나 같은 날, 18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윤00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져 갔다.

 

③ 모두의 바람을 모아

가정폭력 추방운동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과정에는 많은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 당사자들이 함께했다. 1994년 우리 사회에서 처음 열린 아내(가정)폭력 사진전의 첫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보며 오가던 와중에 보따리를 든 여성이 진행하던 우리를 찾아와 한 사진을 가리키며 "제가 바로 저 사람이에요"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금방 그가 피해자임을 알아채고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이문자 선생을 통해 우리 '쉼터'로 안내했다.
 
이런 사례는 그 후에도 많았다. 1996년 초 무료법률상담을 받으러 온 한 여성이 우리나라에 이런 법이 있냐고 물으며, 어서 빨리 이런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법이 만들어진 후 서울여성의전화에서 가해자 프로그램을 받고 있던 한 가해자의 아내, 즉 아내폭력 피해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신문에 가정폭력관련법이 생겼다고 기사가 났기에 기사를 오려서 안방 벽에 붙여놓았다면서, 남편에게 말은 안 했지만 혼자 속으로 '네가 나 또 때리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은근히 과시했다며, 누가 이런 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은 수많은 우리 사회의 아내(가정)폭력피해자들의 호소와 바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