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성관계 거부하자 "너 죽이고 나 죽는다" 남자친구 데이트폭력, 저 좀 도와주세요[언론기고]


표제 : 2010 성관계 거부하자 "너 죽이고 나 죽는다" 남자친구 데이트폭력, 저 좀 도와주세요[언론기고]


주제 : 여성폭력추방운동 ; 데이트폭력


: 미디어운동 ; 컨텐츠생산


: 문화운동 ;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기술 :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한국행사 20주년 기고④] 성폭력 상담 30%가 데이트폭력

'데이트폭력', 더이상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3년 사귀는 동안 3번의 폭력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말다툼 하던 중 아파트 계단에서 나를 밀었어요. 온 몸에 피멍이 들어 여름에도 한동안 긴팔을 입고 지내야만 했어요. 끈질긴 화해 요청에 용서를 했어요. 그 이후론 정말 끔찍하리만큼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어요.

두 번째는 성관계를 거부하자 머리를 때리고 칼을 가져와 '너 죽이고 나 죽는다'며 위협을 해 너무 무서워 경찰에 신고했어요. 하지만 경찰은 '둘이 알아서 잘 해결해보라'는 말뿐 출동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심한 폭력을 당했어요. 그 일이 있은 후 모든 자존심은 무너져내렸고, '내가 어느새 폭력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 없기에 만나서 헤어지자고 하자 이번에는 지하철 선로 근처까지 끌고가 나를 선로로 밀어내려 했어요. 떨어져 죽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내 손을 핸드폰으로 마구 찍어서 손을 놀 수밖에 없었고, 그대로 나를 내동댕이쳤어요.

많이 다쳤으나 남자친구를 고소한다는 건 정말 힘들어 못하겠더라고요. 그 일이 있은 후 모든 것이 무기력해졌어요. 어떨 때는 나도 모르게 (남자친구를) 어떻게 하면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생각하는 내 자신이 무서워졌어요. 어느 날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에 차에 뛰어들어 자살시도를 했었죠.

이 모든 게 지난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주위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요. 다른 무엇보다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런 일은 결코 특별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인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 글은 지난해 11월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본회에서 마련한 20대 여성을 위한 데이트강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를 들은 한 수강생의 글이다. 이 여성은 자살예방센터의 도움으로 본회를 알게 되었고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힘을 얻었단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사례를 들려줘도 좋다는 메일을 보내와 일부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분명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친밀한 관계에서도 폭력은 발생한다. 자신을 20대로 밝힌 이 여성의 데이트폭력 피해사례는 피해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데이트폭력'이란 데이트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신체적·성적 폭력을 말하는데,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고함을 치고, 욕을 하고, 집요하게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오고, 물건을 부숴 위협을 하고, 성관계(임신, 낙태, 동거 등) 사실을 주위에 알리겠다고 위협한다.

죽이겠다거나 죽겠다는 등의 언어적·정서적 폭력에서부터 뺨을 때리고, 벽에 밀치고, 발로 차고 목을 조르고, 흉기로 위협하거나 찌르고, 납치나 감금, 집요한 성관계 요구와 강간 등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당사자나 가족을 살해하는 사건도 발생한다.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과 완벽히 닮아있다.

성폭력 상담의 30.2%, 데이트폭력 상담

부부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폭력의 문제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여자를 때리는 상황을 목격하고, 말릴 때면 '부부'거나 '연인'이라며 남녀 할 것 없이 다른 사람의 개입에 오히려 분노한다.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들조차 개입하기 꺼려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폭력'과 '사랑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사랑과 폭력을 연결하는 극심한 모순이 있다.

"헤어지는 것이 100% 옳은 일이지만 아직은 사랑하기에 헤어지고 싶지 않다", "내가 널 사랑하는 거 알지?"

그것이 누구의 말이든 '폭력'과 '사랑'을 연결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폭력'을 '사랑'이라 말하는 것은 폭력을 정당화하며,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폭력 행위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랑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의 지난 3년간(2007-2009) 상담통계분석 결과를 보면 성폭력상담(1362명)의 30.2%(412명)가 데이트폭력 상담이었다.
데이트폭력 유형에서도 신체적 폭력피해만 호소한 경우는 총 89명(21.6%). 피해자들은 여러 유형의 신체적 폭력을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상담사례를 살펴보면,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머리채를 잡고, 목을 조르고, 흉기로 위협하는 등 경미한 수준의 폭력에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다양한 폭력피해를 입고 있었다.

상담하면서 주로 느꼈던 것은, (폭력 피해 여성들이)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한 번의 폭력에 상담을 청해온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용서해달라"는 가해자의 말을 신뢰하고 싶고, 아직은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고, "내가 잘하면 상대가 변할 것"라는 기대때문에 여성들은 주저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반복해서 폭력이 발생한다. (피해여성이) "헤어지자"고 하거나 연락을 단절하면 다시 폭력을 당한다. 심한 폭력을 당했거나 협박·스토킹 피해를 입고서야 상담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미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가해자를 피해자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변화시킨다거나 폭력을 중지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처방안을 찾기 위해 상담요청을 하는 것이다.

스토킹 가해자의 73.6%는 '데이트 상대자'

2007-2009년 한국여성의전화 전체 스토킹 상담은 총 303명이 했는데 데이트관계 속에서 스토킹을 당한 경우에 속하는 상담인원이 223명(54.1%)이다. 이는 전체 스토킹 상담의 73.6%를 차지한다. 스토킹 가해자의 대부분이 데이트 상대자였으며,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 피해가 지속되기도 하였다. 스토킹은 지속적·반복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특성을 갖고 있고, 상담사례의 경우에서도 일회에 걸친 피해로 상담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스토킹 피해율을 집계하지 못했으나, 여성부(2008)의 <2007년 전국 성폭력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스토킹 피해율을 추정해 보면, 여성인구 1000명당 21.4명이 113.1건의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은 클 수밖에 없으며, 친밀한 관계였던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어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심한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였는데 이는 가해자들이 과도하리만치 피해자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 사생활 침해를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생활하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스토킹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친구·직장·학교 등 일상 생활 및 사회 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집·학교·직장 등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거나, 가족·친구·애인 등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협박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다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 10월 내연녀에게 전치 3주의 폭행을 가하고 돈까지 요구, 이를 거절하자 목을 조르는 등 살인미수에 그친 사건, 지난 7월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 애인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10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던 사건 등은 데이트 폭력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7월의 사건을 두고 언론에서는 가해자의 말을 빌려 '(여자친구 부모의) 결혼 반대에 앙심을 품어 일어난 사건'쯤으로 보도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스토킹'이 있었다. 계속 만날 것을 강요하는 상대를 피해 이사도 하고 직장도 그만두었지만 결국 찾아내 전 애인의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다.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길이 없기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거나 이사를 한다. 연락처를 바꾸거나 외출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로부터 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과 관계를 단절하는 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위축된 삶을 살게 된다. 학업이나 취업 등 삶의 전반에 타격을 입는 것이다.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데이트폭력의 경우 더 심한 폭행을 당할까봐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신고나 고소를 하려고 하면, 사법기관에서는 "좋아서 만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헤어지겠다고 하면 안 때릴 남자가 어디 있나", "몇 번이나 성관계 했느냐", "애인 사이니 둘이 알아서 합의해라", "외상이 없으면 고소가 어려우니 증거를 가져와라", "가해자도 다쳤으니 고소하지 마라", "사랑싸움 가지고 뭘 그러냐", "애인을 고소하고 싶냐"는 등의 말을 한다. 피해자들은 사법기관의 문턱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간이나 성추행, 몰래카메라 촬영 등은 증거자료가 있으면 성폭력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은 많은 경우, 여타의 다른 폭력과 달리 폭력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신체적 폭력이 발생했다고 해도 데이트하는 '관계'였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특히 스토킹처럼 물리적 폭력이 없는 경우에는 '처벌'은 고사하고 '보호'를 기대하기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는 관련법은 없는 실정이다. 만일 스토킹을 처벌하려 한다면, 현행법상 주거침입죄, 폭행죄, 협박죄, 경범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가정폭력 가해자를 집이나 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의 접근을 금지하는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데이트 관계에 있었던 경우에도 가해자 처벌을 위해 접근금지명령 등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연인관계에 가려진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생산자 : 문채수연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날짜 : 2010-12-09


파일형식 : 언론기고


유형 :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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